본문 바로가기

Up-side

인정

[2221호] 2012.08.27
  1. 연재물
  2. 行牀

피터 비스

워싱턴 국회의사당 주변 지키며 미소로 아침을 열어준 노숙자
도시 전체가 그의 죽음 애도 도로 주변 꽃·편지로 뒤덮여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피터 비스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믿는 한국인이 10%도 안 된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도 성공하기 어렵고, 최고 학부의 졸업장을 따와도 장밋빛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확실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부턴가 코리안 드림이 20세기 흑백사진 속의 빛 바랜 추억으로 변해버린 듯하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믿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이민 대국 미국이 그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경제위기, 전쟁, 정국 불안 등으로 전 세계가 어두운 그늘 속에 빠져들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 건재하다. 실업률이 9%에 달한다고 하지만, 미래에 대한 특유의 낙관적 자세는 결코 변하지 않고 있다. 싱글 마더 밑에서 자란 흑인이 하버드대에 가고, 마침내 대통령에까지 오르는 나라가 미국이다. 전 세계 대부분이 믿는 아메리칸 드림은 그 어떤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미국만의 소프트 파워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미국판은 7월 2일자 커버스토리로 아메리칸 드림의 현황을 분석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유효한가’라는 것이 특집기사의 주제다. 문제는 있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전 세계인의 강력한 ‘신앙’이란 것이 결론이다. 흥미로운 것은 커버스토리를 설명해주는 표지용 사진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찍은 것으로, 잘 정리된 푸른 잔디밭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애완견이 잔디밭 위에 있다. 야구를 즐기는 소년, 잔디를 깎는 중년, 애완견을 만지는 여성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풍경이다.

잔디밭이 가져다 주는 평화와 안정감, 스포츠와 애완견이 함께하는 여유와 품격, 기계를 이용한 정리정돈과 무공해 환경…. 아메리칸 드림을 한 컷 사진에 담은 편집진의 상상력과 아이디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표지사진을 보면서 나름의 ‘발칙한 생각’도 떠올랐다. “내가 사진사라면 사진 속 등장인물을 한 명 더 늘렸을 텐데?”

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노숙자(홈리스)가 사족(蛇足)으로 떠오른 또 하나의 구성원이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나름의 패션 스타일에다 뚱뚱한 체형을 자랑하는 노숙자다. 미국 공원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과연 노숙자가 아메리칸 드림을 구성하는 요소인가 하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다. 얼마 전 미국 전역에 알려진 한 노숙자의 부음 소식은 그 같은 의문에 정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미소를 만들어줬다.” 8월 22일자 워싱턴포스트지 1면에 실린 부음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주인공은 피터 비스(Peter Bis)이다. 그는 워싱턴 국회의사당과 유니온스테이션 역사(驛舍)를 오가며 노숙생활을 한 인물이다.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무명의 대학자(rootless savant)’로 명명된 노숙자다. 주소는 물론 전화, 직업도 없이 10여년 이상 노숙자로 살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전혀 우연이지만, 필자는 비스의 죽음이 보도되기 전에 이미 그와 연(緣)을 갖고 있었다. 2007년 7월, 미국 독립기념일 당시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불꽃놀이 행사 때다. 헤리티지재단은 비스의 활동 반경이다. 헤리티지 문앞에서 노란 셔츠 차림을 한 금발의 미국인이 서 있었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상대방도 잘 알고 있는 듯 느껴졌다. 큰 키, 큰 웃음과 함께 잘생긴 배우처럼 와 닿았다. 함께 간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에게 싱크탱크 관계자인가 물어보자 전혀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헤리티지 식구는 물론 국회의사당 직원과 국회의원 대부분이 알고 있는, 워싱턴에서 가장 유명한 노숙자라는 것이다. ‘국회의사당 이웃(the Capitol Hill neighborhood)’으로 모두가 공인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5년 전의 노숙자 기억해? 그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 모두가 애도하고 있어!”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되기 5일 전, 헤리티지재단 친구를 통해 비스의 죽음을 알게 됐다. 연구원들 간의 SNS를 통해 비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메시지가 전해졌다고 한다.

비스가 국회의사당 이웃으로 공인된 것은 활동무대가 국회 주변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회에 출입하는 모든 직원과 국회의원들에게 기억에 남는 인사와 친절함 그리고 미소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비스와 거의 매일 만나는 연방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대화를 나누던 10분 동안 보행자 50여명과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교환했다”고 말한다. 만난 사람의 이름을 전부 기억해내고, 그들의 소소한 일상사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일과 출산일을 기억하고, 휴가를 언제 갈지에 대한 조언도 해줬다. 주말이 며칠 남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출근길 국회의사당 앞의 비스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다.

노숙자와 보행자가 나누는 ‘짧고도 긴 대화’는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 중 하나다. 노숙자가 담배를 하나 달라고 말하다가, 보행자와 어울려 이름을 교환하고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집이 없을 뿐,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거지와는 다르다. 손을 벌리더라도 당당하고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다. 경험담이지만, 햄버거집 앞에서 기다리던 노숙자에게 1달러를 주자, 필요한 것은 50센트라면서 나머지 50센트를 돌려주는 ‘친절함’도 발견할 수 있었다. 비스는 돈을 구걸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노숙자다.

비스는 미시간주 캘러머주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집 근처 웨스턴미시간대(WMU)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1974년 로스쿨에 들어가 법률도 공부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호텔과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보여온 정신분열증 증세가 심해지면서 스스로 집을 나가게 된다. 이후 미국 전역을 떠돌면서 노숙자이자 여행객으로 살아왔다. “형은 여행 중 한 번도 자동차 히치하이크를 하지 않았다. 미국 전역을 두세 번 일주했다.”

동생 제임스 비스는 형이 정신분열증을 앓았지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른 적은 없다고 말한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특히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비스의 노숙자 생활은 원래 뉴욕의 국제연합 빌딩 앞에서 시작됐다. 워싱턴으로 옮긴 것은 1997년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인터넷을 이용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기도 했다. ‘피터 비스: 바티칸 국제금융 마피아’라는 키워드를 단 음모론에 기초한 블로그다. 비스는 평소에 CIA 요원으로 일한다는 말을 주변에 자주 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데이트를 했다는 얘기도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비스의 활동무대이자 숨진 곳인 워싱턴 매사추세츠주 애비뉴의 대로변은 시민들이 가지고 온 꽃과 편지로 뒤덮여 있다. 비스와 알고 지내던 교인들이 많은 세인트 조지프스(St. Joseph’s)는 수백 명의 추도객과 함께 특별 애도식을 주관하기도 했다. 비록 노숙자이지만 커뮤니티의 구성원에 대한 예의와 존경이 품위 있게 이뤄졌다.

미국 노숙자 박멸 전국연합(NAEH)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미국인 194명 중 한 명이 노숙자라고 한다. 3억 인구 중 약 150만이 노숙자인 셈이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지만, 정신적 결함이나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해 거리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노숙자의 원인과 배경을 하나로 꼭 집어 설명하기는 어렵다.

동양적 정서로 볼 때 비스의 죽음을 둘러싼 미국인들의 남다른 관심이 의아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미국과 서방 선진국은 노숙자도 사회를 구성하는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키운 열 자식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극히 단순화된 인간사회의 단면이지만, 보통 상위 30%가 성공하고, 중간 40%는 현상 유지, 나머지 30%는 평균 이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열 기준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정을 나누는 곳에 문화와 문명이 꽃핀다. 노숙자가 왜 아메리칸 드림 속 한 장면을 차지하는지, 미국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에 실린 정신분열증 노숙자의 죽음을 통해 답을 구해본다

 

 

------------------------------------------------------------------------------------------

 

제 3자에 의한 인정. 이 상당히 많은 문제들의 근원이 되며 많은 것들을 치유함

그만큼 내면 깊숙히 가장 갈망하는 뜨거운 욕망일지도

사실. 나 스스로는 따지자면 '이해와 공감'에 대한 욕망, 태초부터 이어져온 나의 갈비뼈, 분신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세상과 어느정도 타협한 방법이라고 정의하지만

최소한의 그것마저 충족되지못하고 버려지는 이들은 과연 누구의 탓인가.

 

인정은 철저히 스스로의 내면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아니면 한 개인의 인정으로 부터 당사자, 타인에게까지 파생되어 나가는 것인가.  

'Up-sid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0) 2013.01.18
floating, rootless  (0) 2012.09.24
[기고문 1] How to succeed in Action Learning  (0) 2012.09.13
고슴도치의 우아함  (1) 2012.09.12
지신락페 1  (0) 201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