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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tless

09.25

우리는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다

모든 연인이 그러하듯

반짝이는 시간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으며
조잘대고 함께 바라보는 순간들이 있었다.

헤어짐의 이유는 없다
그냥 사랑이 끝났고 그래서 이별을 했을 뿐이다.

담담했다.



몇몇의 의미없는 술자리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내심 이렇게 글을 쓰고
혼자 차분히 생각을 하고,
일정을 잡고,
여유를 즐기는 지금 이순간들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글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때그때의 사건들과 그로 인한 생각들,
감정들,
나의 가치관들,
을 즉각적으로 들어주고, 귀기울여주며,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는 대상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꽤나 그는 높은 수준의 인격체라
혼자 내뱉아져서 갈곳없이 헤매고 고여서 사라져갈 나의 말들에
아주 그럴듯하게 의미를 부여해주고 제자리를 찾게끔 도와주는,
나만큼이나 말도 많고, 또 경청의 스킬을 갖춘
활발하고 건강한,
훌륭한 대화상대였다.

사실 나는 꽤나 수다쟁이에 말이 많아서
이 이야기를 쏟아버릴 대상이 되어주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를 만나는 동안에는
필요하지 않아서 서운해한 이들이 꽤 여럿인 모양이다.

재미가 없었다.

그와의 대화가 가장 재미있었고 의미있었으며
때로는 고귀하기까지 해서

순간에는 영원을 꿈꿨던 것도 같다.

(그때쯤 버릇처럼 너랑 이야기하는게 제일 재미있어. 다른사람들은 재미가 없어 이제. 지금 당장, 너와 이야기 하고 싶어. 라고 말하곤 했었다)

(나의 무심함은 나의 충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용서를 하게 친구들이여)


이별도 하나의 사건이고,
그를 사랑했던 순간들이 끝나버린 시점에서 달라진 나의 생각들, 가치관들, 그때그때 지금 떠오르는 감정들을 충만할 때라

나누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고,
아니 일방적으로 던지기보다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망이 가장 강한 시기인 것 같은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서운한 게 막상, 그리 괜찮은 대화상대는 드물다는 점. 일반적으로는 일방적이거나 한쪽에 쉬우치기 쉬우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적수준과 관심사, 사람과 환경, 성향, 성격이 딱, 적합한 수준으로 얼키고 설켜야 하기 때문에.)


참 재미있는건
누구보다도 그에게 달려가 이야기 하고 싶다는 점이다.

우리의 사랑은 끝났고 덤덤했으며, 이별이라는 선택에 서로가 아주 만족할 만한 이상적인 이별이었는데

이 재미있는 사건을 가지고 각자와 제 삼자의 이야기인양

꺼내어 놓고
또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가며
또 얼마나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어 갈지

실은 이 부분이 가장 기대가 된다.



나의 연애라는 것은 그어떤 감정적인 서운함과 고마움과 집착과, 뭐 그런 별반 다를 것 없는 많고 많은 것들 중에 하나였는데

그와 나였기에

때로는 그것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감정이 고조된 연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기보다

그런것들을
대화의 주제로 올려
나의 감정과 그의 감정들에 대해서
마치, 그런 경험들을 친구에게 쏟아내듯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솟아나는 이야기들을

이제 다시 이 공간에 얘기하고 있다는 거고,


꽤나 긴 이야기들이 이어져 나갈 것 같긴 하지만

이것 또한 좋지 않은가.


나의 글들.
나의 수다스러움.



(그럼 의미에서 글을 쓰는 자들은 참으로 외로운 존재가 아닌가)



결론이랄껀 없는데, 


언젠가는

그와 만나 이 재미진 사건들에 대해
또 달라진 서로에 대해

술한잔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나갈 기회가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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